※ 의역 있습니다.
2015년,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마츠모토 야마가 FC
2015년 10월 4일,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 위치한 호텔 브에나비스타에서 "마츠모토 야마가 FC 설립 50주년 기념 축하회" 가 열렸다.
축하회에는 클럽 출신을 시작으로 지자체 관계자, 그리고 무라이 미츠루 J리그 의장 등 400명 이상이 참가했다.
당시 마츠모토 야마가는 처음으로 J1리그를 밟아 고전을 이어가던 중이었지만, 이 날 만큼은 클럽 관계자의 표정도 밝았다.
그리고 야기 마코토 대표와 영업을 담당하는 오자와 슈이치에게는 반세기 동안 쌓인 클럽의 역사를 체감했던 하루였다.
「그 날은 저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이 "야마가를 이렇게 크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라든지, "J1리그에서 뛰고 있는 야마가가 자랑스럽다" 라든지 그렇게 말씀하신 클럽 출신 분들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야기 마코토)
「저는 이 클럽이 J리그를 목표했던 2005년부터 10년 간의 역사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클럽 출신 분들 덕분에 클럽이 지금까지 이어져왔구나' 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자와 슈이치)
이 해에 J1리그에 소속했던 마츠모토는 "클럽 설립 50주년" 을 맞이했다.
교토 상가 FC(1922년), 도쿄 베르디(1969년)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J리그 클럽 다수가 J리그 출범 이전인 1992년 이후 설립됐다.
JSL(일본축구리그, J리그의 전신) 에 소속했던 기업 팀 역시 많은 수가 클럽이 주식회사화(化) 했던 해를 설립연도로 하고 있다.
그 중 마츠모토의 설립 배경은 매우 특수하다.
마츠모토 야마가 FC의 시작은 기업 팀도 아니고 교원 팀도 아닌 국철 마츠모토 역 부근에 있던 찻집에서 유래한다.
가게 이름은 바로 "찻집 야마가"
이곳의 단골 손님들이 만든 아마추어 축구팀이 오랜 세월에 걸쳐 J1리그까지 도달한 것이다.
2015년을 기점으로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지방의 한 클럽이 걸어온 반세기에 대해 고찰해 본다.
39년 만에 부활한 "찻집 야마가"
도쿄 올림픽이 열린 다음 해인 1965년에 마츠모토 역 앞에 오픈한 찻집 야마가는 국체(일본의 전국체전) 개최에 따른 역의 재개발로 인해 1978년에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39년이 지난 올해 2월, 찻집 야마가는 JR 마츠모토 역에서 도보 15분정도 떨어진 미도리마치라는 곳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마츠모토 야마가 FC와 관련된 상품(굿즈) 판매와 이벤트 공간으로도 사용되는 이 곳은 팬, 서포터의 새로운 거점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 새로운 찻집 야마가를 생각한 사람은 바로 마츠모토 야마가 FC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오자와 슈이치였다.
구)찻집 야마가가 문을 닫은 후에 태어난 오자와는 어째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일까?
「2015년에 J1 승격을 했을 때, "승격 기념 사업" 이라는 형태로 찻집을 부활시키자는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소와 인력 문제로 중단됐었어요. 결국 1년 만에 J2로 강등됐을 때, 개인적으로 '뭔가 새롭고, 야마가스러움을 찾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서 생각해낸 것이 찻집 야마가의 부활이었습니다. 제안한 것은 작년 1월이었죠.」
우선은 적합한 장소를 물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에서 폐업한 음식점을 소개받았다. 역에서는 조금 떨어진데다 연회장 공간도 있었기 때문에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넓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자와 슈이치는 주소가 "미도리마치(한글로 초록마을)" 라는 부분에서 영감을 느꼈다.
마츠모토의 팀 컬러도 녹색이었기 때문에 「이곳 밖에 없다」 고 결정했지만, 문제는 보수 비용이었다.
「보통 아마 6천만~7천만엔 정도 들어요. 하지만 이곳은 평소에 야마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사도 그렇고 집기도 그렇고 보통의 경우와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용으로 해결했어요. 미장도 봉사 수준의 비용으로 마쳤습니다. 이 가게를 만든 사람은 "야마가를 사랑하는 사람" 일 수 밖에 없어요(웃음). 그 곳은 우리다운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장소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다.
1960년대의 찻집과는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오자와는 디테일에 신경썼다.
당시 로고 마크를 식기와 유리컵에 프린트하고, 커피의 맛에 대해서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시음을 부탁하며 재현했다.
그리고 가게 안의 벽에는 역대 유니폼과 옛 사진을 전시하는 등 반세기동안 쌓아온 클럽의 역사를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리하여 새로운 찻집 야마가는 2월 25일, 이번 시즌 J2리그 개막일(26일) 에 맞춰 무사히 오픈했다.
하지만 오자와에게는 씻지 못할 불안도 있었다고 한다. 그건 바로 과거에 찻집 야마가를 기억하는 클럽 출신 멤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야마가 출신 예전 멤버분들의 반응이 조금 두려웠어요. 이 가게는 현재 분위기의 카페로 예전 찻집같은 분위기는 나지 않잖아요. 만약 "이런 카페는 찻집 야마가가 아니야" 라고 말할까봐 어쩌나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모두들 기뻐해주셨어요. 아마 이전 가게와는 다르지만 예전 사진이나 유니폼을 장식하며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아주신 느낌이었어요.」
알윈 스타디움(홈 경기장) 을 꽉차게 하고 싶다" 는 바람
마츠모토 야마가 FC의 전신인 야마가 클럽은 1975년 시작된 호쿠신에츠 지역리그에 참가했다.
이후 JFL 승격을 결정한 2009년까지 실제로 35시즌에 걸쳐 한번도 나가노현 리그로 강등되지않고, 지역리그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왔다.
그런 야마가 클럽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 2001년 구기전용(주로 축구,럭비) 으로 완공된 알윈 스타디움의 존재였다. 야기 마코토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알윈은 2002년 월드컵에서 파라과이 대표팀의 훈련 캠프로 사용됐지만, 월드컵 이후의 활용 문제는 지역에서도 과제로 남았었습니다. 그 시점에 청년회의소의 뜻이 모여 2004년 9월 알윈 스포츠 프로젝트(이하 ASP) 라는 NPO 법인이 출범하게 됩니다. 몇 안 되는 축구 경험자라서 저도 참여했었죠.」
2005년, 야마가 클럽은 마츠모토 야마가 FC로 클럽 명을 변경하고, J리그를 목표로 한다는 것을 선언했다.
원래 ASP는 처음부터 야마가 클럽의 프로화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요점은 알윈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라고 야기 마코토 대표는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최초의 ASP는 야마가를 위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제안한 팀은 호쿠신에츠 리그 소속의 야마가 클럽과 FC 앤텔로프 시오지리였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은 야마가 쪽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추억을 말하자면 고등학교 시절에 야마가와 연습 경기를 자주 했었죠. 축구도 잘하고 강팀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야마가와 경기를 하면서 많이 배웠고, 즐거웠습니다.」
ASP와 야마가 클럽과의 만남은 마츠모토의 성공 스토리의 기점이 됐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알윈 스타디움의 관중석이 가득 차면 언젠가는 J리그에 도달할 수 있다" 는 ASP의 당초 목적 의식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앞서 기술한 것처럼 "승격이 전제가 아니라 관중을 모으는 것이 전제" 라는 것이다.
사실은 야기 마코토 대표에게는 「"그" 풍경을 언젠가 알윈 스타디움에서도...」 라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었다.
여기서 언급한 "그" 라는 것은 야기 마코토 대표가 20년 정도 전에 코마바 운동공원 경기장(현 우라와 코마바 스타디움) 에서 봤던 우라와 레즈의 홈 경기를 의미한다.
「조명탑이 밝아지고, 선수들이 워밍업을 시작하면 응원기가 올라가면서 서포터들은 일제히 "우라와 레즈!" 라는 콜을 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관중석이 전부 붉은색으로 돼있었죠. 저를 경기장으로 이끈 분이 "여기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유럽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야"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이해됐습니다. 알윈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이미지는 그 때 코마바 스타디움에서 본 풍경이 베이스가 됐습니다.」
클럽을 설립한 해인 "1965"는 찻집 야마가가 개업한 해였다.
「알윈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있는 날에는 일이 없는 한 찾아 가려고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서포터 여러분이 "야마가!" 라고 콜을 할 때는 뭔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기쁘면서 쑥쓰러운 듯한.. 뭐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 손에서 떨어진 야마가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고 활약하고 있으니깐요.」
올해로 68세인 야마시타 케이코 씨는 예전 찻집 야마가를 기억하고 있는 소중한 증언자이다.
부친인 야마시타 츄이치 씨가 셀러리맨을 그만두고 1965년 찻집 경영을 시작한 것은 「등산이나 스키를 하는 동료들의 거점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 이라고 한다.
"야마가(山雅)" 라는 이름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는 가게라는 의미가 담겨 있고, 내부 장식도 산장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가게의 단골들은 츄이치 씨를 "아빠", 케이코 씨를 "케이쨩" 이라고 불렀다. 가게를 오픈한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단골 손님들 사이에서 "축구를 하자" 는 말이 나왔다.
「'스키나 등산 이외에도 모두가 뭔가 스포츠를 하고 싶어하는구나' 라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야구가 유행이었지만 방망이나 글러브를 사려면 돈이 들기 때문에 공 하나로도 할 수 있는 축구를 하자고 했어요. 고등학교에서 축구를 했던 두 분 정도가 계셔서 어깨 너머로 배우는 느낌을 받았어요. 멤버가 모이지 않을 때는 당시 40대 중반이셨던 아버지도 경기에 끌려갔었죠(웃음)」
찻집 단골 손님들이 만든 그 아마추어 축구팀은 머지않아 "보다 높은 레벨에서 뛰어보자" 는 것을 목표로 1975년 호쿠신에츠 리그의 원년 멤버 팀으로 참가했다.
그로부터 3년 후에 찻집 야마가가 문을 닫으면서 "야마가"의 이름을 딴 클럽은 야마시타 가문 사람의 손을 조금씩 떠나갔다.
2011년 12월, 마츠모토 야마가 FC의 J2리그 승격 소식을 들었을 때, 부친 야마시타 츄이치 씨의 모습에 대해서는 「병으로 누워계시면서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지만, 한마디 "그랬구나..." 라며 눈물을 흘렸었죠.」 라고 회상했다.
야마가의 "아빠" 츄이치 씨는 다음 해인 2012년 7월, 향년 91세로 먼 길을 떠났다.
자, 이제 여기까지 읽고 눈치채셨을 분들이 계실 것 같다.
마츠모토가 클럽을 설립한 해인 1965년은 실제로 축구 활동을 시작한 해가 아닌 "찻집 야마가가 문을 연 해" 가 된다.
그럼 2015년에 있었던 50주년 기념은 과연 무효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의 TSV 1860 뮌헨은 설립한 해를 1860년으로 하고 있지만 원래는 체조 클럽이었고, 축구를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9년 후다.
클럽 설립연도는 반드시 "축구 활동을 시작한 해" 로 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구를 하기 이전, 등산이나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던 찻칩 야마가는 넓은 의미에서 클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찻집 야마가" 라는 클럽이 없었더라면 마츠모토 야마가 FC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찻집에서 시작된 아마추어 축구팀이 반세기를 걸쳐서 일본의 톱 리그까지 올라갔다.
이것은 뭔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